<8> 블랙 팬서 (Black Panther) – ‘틀림’이 아닌 ‘틀림’
여름 동안”기독교적 영화를 읽는다”을 부제로 한 딸과 함께 쓰는 영화 감상을 말하고 있습니다.같은 영화를 보는 두개의 다른 관점, 두개의 다른 해석이라는 의미에서 “영상 동상이몽(영상 동상이몽)”이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어머니 C의 시선 개인적으로 “마벨(Marvel)”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봤던 마벨 영화라고 해도”소(Thor)”과 “스파이더맨(Spider Man)”,”원더 우먼(Wonder Woman)”정도가 고작인 내가 이”블랙 팬더(Black Panther)”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대”마벨 코믹스(Marvel Comics)”에서 처음으로 흑인이 주인공을 맡은 최초의 “흑인 영웅”다는 사실에 관심을 느꼈습니다.이전에도 액션 코믹스의 등장 인물 속에 흑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주로 백인 주인공 옆에서 돕는(초 능력이 없는)조연급의 역할였다면, 이”블랙 팬더”이라는 캐릭터는 미국의 만화에 등장한 최초의 흑인”메인 스트림”슈퍼 영웅일 뿐 아니라”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은 아니다”아프리카 대륙 토착민(Africandescent)”라는 특이점까지 가졌다는 것입니다.21세기 들어서도 20년 가까운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공개 연도가 2018년이어서 –”흑인”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게 되는 현실이 매우 아쉽긴 하지만.”만화”의 주인공으로 한 “블랙 팬더”가 탄생한 1966년 당시 미국은 갈등과 혐오 등 모든 사회 문제에다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베트남 전쟁까지 겹치면서 국가적 혼란이 심했던 격동의 시기였지만,”환상적·포(Fantastic Four)”을 통해서 독자에게 처음 선 보였다”블랙 팬더”는 공교롭게도 급진 흑인 운동 단체”흑표당(BBP:Black Panther Party)”가 공식 창당(1966년 10월)3개월 전( 같은 7월)의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이 둘 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 그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급진 운동 단체가 주는 과격한 이미지에 의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블랙 레오파드(Black Leopard)”로 캐릭터의 이름을 바꾼 것도 있었다고 그 후 이름이 가진 영향력이 미소로 결국 원래의 이름에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라고 하네요.
영화 제목인 “블랙 팬더”는 특정인의 이름보다 아프리카에 위치하는 나라로서 소개되는 가상 국가”와캉다(Wakanda)”의 지도자를 일컫는 호칭입니다만, 영화의 시작에서 언급되도록 와캉다는 아프리카 대륙을 처음 태어났을 당시 그들의 토지에 “비브라니움”는 운석이 떨어지고 놀라운 기능을 가진 신비한 금속 비브라니움(대리석 시리즈에 능한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물질이라는)을 다량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이처럼 풍부한 자원에 힘입어 고도의 기술과 문명을 이룬 와캉다는 주변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불안정한 정치 체제와 궁핍한 경제 상황에 시달릴 때에도 자신들의 풍요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왔지만 세월이 흐르는 제국 주의를 앞세운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침공하자 극도의 과학 기술을 사용하여 바깥 세계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가리면 동시에 외세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고립 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21세기까지 대외적인 이 와캉다가 아프리카 군소 국가 중에서 가장 유명합니다.영화의 주인공인 “티 자라(T’Challa)”는 아버지인 선대”블랙 팬더”인 “티 챠카(T’Chaka)”왕의 사망으로 후계자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테러에서 발생한 아버지의 죽음 이전의 “가정사”가 적지 않게 복잡합니다.영화 시작과 동시에 보인다 과거(1992년)상황에서 티 챠카의 동생으로 티 없던 일의 고모부인 “웬 할아버지(N’Jobu)”왕자는 외국에 파견되어 정보를 수집하는 “워 도그(Wardog)”신분으로 미국에 잠입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가정을 이루고 정착한 뒤 현지 흑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와캉다의 비브라니움과 무기를 이용하고 백인들에게 복수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 무렵에 일어난 비브라니움 도난 사건 사건을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직접적인 상황에서 동생이 됐다.
현재 시점이 바뀌면서 볼 수 있는 재미 있는 장면은 엔조 남편의 아들인 “킬몽 가(Killmonger)”이 성장하고 복수를 하러 와캉다에 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부산”이 등장하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자기 아버지가 왕이던 시절부터 비브라니움을 털어 온 “쿠로(Klaue)”이라는 악당을 체포하기 위해서 주인공 티 없던 일과 그 옛날 애인”나 기아(Nakia)”경호원 격인 장군”오코이에(koy)”등이 부산”부산”의 추격기에 출동한 후.쿠로와 함께 범죄를 공모한 킬몽가ー이 여러가지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거쳐서 체포된 크로의 도주를 돕지만 실은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웬 할아버지)가 받은 오해의 원흉인 그를 죽이려고 킬몽가ー이 건 전략이어서 크로를 탈주시킨 뒤 곧바로 직접 사살하고 버립니다.그리고 그의 시신을 가져다 칸다에 나타납니다. 아버지(웬 할아버지)의 복수 때문에 와캉다에 온 킬몽 나는 왕족인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동생의 티 하비에르 찰라에게 왕위를 건 도전장을 내밀어 선왕인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시달리던 티 자라는 심리적 부담으로 결투의 과정에서 감정을 앞세워서 절벽(폭포)아래에 내던져져서 버리지만 그 뒤 주변 부족들에게 도움을 받아 부상에서 회복하고 다시 킬몽가ー과 싸우고 승리하고 킬몽가ー은 돕는다는 티 없던 일에서 제의도 마다한 채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야기가 끝납니다.최대한 간결하게 축약한 이 줄거리에 비하면- 자세한 내용을 모두 기록하면 읽는 사람들이 무척 혼란할 것 같아서-실제의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고 있다고 동시에 많은 생각도 제시하고있습니다만, 제한된 공간에서 모두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이 글에서는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는 2가지 측면만 보려고 합니다.
첫째,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방식”을 할까?라는 문제입니다.부유하고 안전한 모국과 칸다로 성장하면서 국왕인 아버지 밑에서 평탄한 생활을 하고 온 주인공 티 없던 일과 “이야 독(Wardog)”이라는 불안한 신분에서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활동하던 웬 할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킬몽 나 사이에는 옳다고 믿는 것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관점에서 큰 차이가 생겼습니다.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온건하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조국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하기를 바라는 티 없던 일과 달리 부당한 대우와 심한 차별을 겪어 왔다 킬몽 나는 자신이 당한 것과 같은 수준의 폭력으로 상대를 혼 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방식에 대해서 각각 다른 형태의 양극단을 딴”에세네파(Essenes)”과 “제 로트파(the Zealots)”미국의 “킹·르텔 운동”의 흑인화했다.세속의 삶과 분리된(“경건”에 근거한)삶을 통해서 세상과 거리를 두기로 로마의 지배권에서 벗어나기를 꿈꿨었다”에세네파”과 달리”열심당”이라고도 불리는 “지에롯파”는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테러로 암살을 갖고 무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극적인 것과 비슷하고 둘 다”흑인”목사의 아들로 태어나면서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며 유수의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마틴·루사·킹·주니어”와는 달리 이슬람 교도의 아버지로 개종파에 의해서 성장한자기가 받은 부당하고 억울한 현실을 타개함으로써 어떤 입장과 방식을 취하느냐의 선택이 각자에게 남겨진 몫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두번째는 자신과 ” 다른 “개인과 집단에 대한 태도에서 어떤”방식”을 할까?라는 문제입니다.”인종”이나 “성별”처럼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하늘이 정해서 준-서로 다른 아이덴티티(identity)을 가지고 사람을 구별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지적 무지와 윤리적 타락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범죄라 불릴 만한 행위입니다.한국 유명 연예인과 운동 선수들조차 해외에서 인종 차별을 받는 것을 목격하며 분개하는 우리가 실제로 특정 인종 또는 특정 국가 출신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하는 현상도 시급한 각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이 영화의 여러가지 장면에서 “흑백”이라는 인종 차이만이 아니라”남녀”라는 성별의 차이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는 것 역시 같은 문제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보겠습니다.성경을 꼼꼼히 읽을수록 더욱 드러나는 사실은 하나님 안에서의 모든 인간의 동등함과 고귀함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된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도,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갖고 서로 자신보다 남을 좋게 생각하세요;표준 새 번역(Donothing from selfishness or empty conceit, but with humility consider one another as more important than yourselves;NASB)”와 바오로를 통해서 주어진 권고(빌딩 2:3)은 물론”형제가 함께 마음을 하나로 산다는 게 얼마나 선량하고 얼마나 좋을까!;한국어 성서(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God’s people live together in unity!;ESV)”과 다윗의 입을 빌어 준 액면(시 133:1)에 의해서도 “신이 거기에서 복을 약속 받았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새 번역(there the Lord commanded the blessing, even life for evermore;NKJV)”이라는 신의 약속(3:기억이 있습니다.딸의 J의 시선 마블(Marvel)사가”아이언맨(Iron Man)”1편을 필두로 이른바”블록 버스터 공장”을 설립하고 영화 생태계를 어지럽히기 시작한 것도 십 수년 전부터다.사실 2012년에 공개한 최초의 “어벤져스(The Avengers)”까지는 꽤 신선한 영웅물 시리즈라는 생각에서 흥미로운 관람도 했지만, 그 다음은 마블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너무 문화적 영향력이 큰 시리즈이기 때문에 스토리는 어느 정도 알고 두는 편이었지만 그나마 마블 세계관(Marvel Cinematic Universe)가 실사 영화를 뛰어넘어 텔레비전 드라마와 애니메이션까지 뻗어 가면서 다양한 차원과 평행 세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다중 우주”, 즉”멀티 버스(multiverse)”을 소개하기 시작한지는 그것도 포기하게 됐다.하지만 최근의 마블 영화가 초기와는 달리 그 매력을 많이 잃었다고 보면서도 “영웅물”이란 장르 자체에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초인적 힘을 가진 “히어로”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그런 맥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블 영화인 “블랙 팬더(Black Panther)”는 바로 그 영웅물의 힘, 매력, 가능성과 작품성의 집약체이다.굳이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잘하는 저항(triumphant resistance)”으로 정의되는 이 영화는 “블랙 팬더”라는 흑인 영웅을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흑인들을 더 넓게는 소외된 탄압을 받은 모두에게 위로가 기억하는 당당하게 찬탄하는 작품이다.
먼저 말했듯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마블 세계관은 매우 복잡하지만 이 글에서는 “블랙 팬더”란 작품과 관련된 부분만 지적하려고 한다.주인공”티 자라(T’Challa;고 Chadwick Boseman)”은 아프리카에 위치한(허구)국가”와캉다(Wakanda)”의 왕자에서 영웅들을 노린 테러 사건의 아버지를 잃게 된다.선왕에 이어와캉다의 왕위를 계승한 티 없던 일이 “블랙 팬더”라고 불리는 히어로의 임무를 맡았으나 와캉다 왕들은 대대로 초인적인 능력과 무기로 무장한 블랙 팬더에 와서 그들의 나라를 지킨 때문이다.와캉다는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주변국과 외적으로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 어느 곳보다 발달한 최첨단 기술력과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국가이다.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희소 금속이다”비브라니움”이 막대한 양으로 매장된 와캉 다는 그 금속을 응용하고 놀라운 발전을 이뤘으나 이 사실이 국외로 알려지게 되면 전 세계가 비브라니움을 노리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을 우려하고 가난한 “개발 도상국”으로 보이도록 어떠한 교역과 무역도 시도하지 않는.모국을 사랑하는 티 없던 일이라는 아버지인 선왕이 그랬듯이 와캉다의 비밀을 감추고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다른 지도자의 경우처럼 그도 역시 많은 반대 의견에 맞닥뜨리게 된다.티 없던 일이 여전히 사랑하는 전 애인”나 기아(Nakia)”은 와캉다 자원과 기술을 사용하고 주변 아프리카 국가를 돕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그에게 권하고, 친구인 부하인 “와 곰팡이(W’Kabi)”은 와캉다가 지금처럼 웅크린 대신 그 엄청난 무력을 이용해서 남의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을 바란다.한편 와캉다를 구성하는 5개 부족 중 유일하게 왕의 통치를 거부하고 산 속에 위치하자 바리 부족의 족장”무 챙기M’Baku)”은 현재 와캉다가 전통과 역사를 경시하고 지나치게”현대화”또는”기술화”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아프리카판”흥선 대원군”라고 불릴 만한).
비슷한 이유로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의 하나는 “와캉다”라는 나라다.한번도 식민지가 된 것 없는 외세의 침략에 굴복한 적 없는 아프리카의 자유 주의 국가란!일제의 탄압은 물론 명나라와 전 등 대륙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자치권을 한번도 잃은 것 없는 “대한민국”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상하는 낯선면서도 달콤한 설정이다.최첨단 기술과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가 완벽한 와캉다의 전경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전통 의상, 여성과 남성이 성별 구분 없이 부족을 이끌 뿐 아니라 왕의 친위대인 “도라미라제”는 여성 전사들로만 구성된 모습 등은 가슴이 뛸수록 이상적이다.보기에 따라서는 작위적이기도 하다만,”와캉다”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이 나라가 “완벽하지 않으면”이라는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강대국에 수없이 짓밟히고 온 아프리카 대륙이 내부의 혼란과 갈등까지 추가된 붕괴하고 자신들의 조상이 자리 잡은 곳을 떠난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 흑인이 와캉 다는 상징적이고 로맨틱한 “고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허구이지만, 그러므로 더 완전한 어떤 영적인 고국으로이다.악과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인간이 질투와 고통과 부끄러움을 알기 전에 옷을 벗은 채 하나님과 함께 다니면서도 당당하고 완전한 “에덴”을 상징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상처 받은 적이 없는 그 자부심과 자기 결정력을 잃은 적 없는 “와캉다”가 강하고 아름다운 만큼 이 영화에서 티 없던 일의 경쟁자로 그려진다 킬몽가ー의 입장을 보다 이해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와캉다가 그 엄청난 부와 기술력을 보유하면서도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형제 자매”(기본적으로는 같은 흑인을 의미하는데 힘 없는 모든 사람들을 맞춘 표현이기도 하다)에 등을 돌렸다는 그의 질책 역시 틀림없기 때문이다.실제로 킬몽가ー도 와캉다의 무관심, 또는 이기심의 피해자로 설명할 수 있다.아버지의 “웬 할아버지(N’jobu)”왕자는 간첩으로서 미국에 “파견”됐지만 미국인과 사랑에 빠진다 아기를 낳고 미국 내 흑인의 절망적 상황을 직접 목격한 뒤”급진 주의자화”된 인물이다.비밀리에 와캉다 때문 비브라니움을 빼내고, 힘 없는 흑인들에 무력적 지지가 되던 그는 자신의 형인 티챠라의 아버지인 선대 왕의 손으로 처리된다.그러나 그 진실을 듣고자 한 선왕은 동생의 아이를 와캉다에 데려온 대신 미국에 ” 버리고” 왔고 기댈 곳이 아닌 어린 아이는 고통과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독기와 악만 살아남결국 와캉다의 평화를 위협한다.
이 영화에서 티 없던 일을 “와캉다 출신의 흑인(African-African)”에 킬몽가ー을 “미국 출신의 흑인(African-American)”에 대비시킨 사실도 흥미롭다.와캉다에서 태어났으며 계속 그곳에 살던 티 자라는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고”순수”에서 ” 예쁘다” 말고 변질되지 않은 자신의 조국에서 갈등이 없는 건강한 자아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차별을 ” 받은 적이 없다”사람으로서 존중되는 인간 본래의 당당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있다.거꾸로 킬몽가ー은 억압과 불평등으로 지치는 차별을 ” 받지 않는 삶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킬몽가ー이 실제로 흑인 무장 집단”블랙 팬더(Black Panther Party)”이 태동한 곳인 캘리포니아의 도시”오클랜드”에서 왔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라이언·크ー그라ー도 오클랜드 출신이다).그러나”폭력적 저항”를 고향에 가진 킬몽가ー은 결국”와캉다 블랙 팬더”가 될 수 없다.킬몽 나는 분명 입체적이고 딱한 공감을 부르는 인물이지만 그는 자신의 분노와 증오에 먹히고 결국 패배한다.그의 울분이 정당했는지 모르지만 억압되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가지고 억압하는 자들을 살해하겠다는, 정복되는 대신 전 세계를 정복하고 와캉다가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킬몽가ー의 외침은 그가 자신이 증오하고 왔다”탄압자”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을 가리킬 뿐이다.살인을 할 때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표시했다는 킬몽가ー이 티 없던 일과 전투 전에 옷을 벗자 울퉁불퉁한 상처가 뿌듯한 피부가 나타나는 모습이 그저 누군가를 누르고” 죽이고” 서야 이룰 수 있는 그의 목표와 복수가 그 자신에게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겼는지를 잘 보인다.살인”판매자”또는 살인”상인”등과 번역될 수 있다”killmonger”을 자신의 가명으로 선택한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대신 영화는 티 없던 일을 통해서”새”블랙 팬더의 모습을 제시한다.사랑하고 존경한 아버지의 죄와 실책을 직시한 그는 조상이 남긴 “표면”의 유산을 마다한 채 전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아프리카의 주변국과 바깥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안전만 생각하던 예전과 달리 굳게 다물고 있던 문을 열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기술, 지식 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도록 한 것이다.킬몽가ー이 세상을 증오와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그가 정말” 할 자리”로 오르겠다고 했다면 티 자라는 자신이 온당하게” 누려야 할 것”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낮은 자리에서 협력과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이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유명한 흑인 작가인 공민권 운동가였던 제임스·볼드윈(James Baldwin)의 책”The Fire Next Time”에 실린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그가 조카에게 쓴 편지 한 구절을 몇번이나 생각이 났다.조카에게 백인(인종 차별을 함)를 닮거나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던 볼드윈은 그 대신”그들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You must accept them and accept them with love)”이라고 말했다.그들 역시 사실은 차별과 증오라는 덫에 갇힌 사람들임을 상기시켰다”이 죄 없는 자들은 그 이외의 희망이 없으므로(For these innocent people have no other hope)”라고 그는 말했다.억압 받는 자가 억압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만큼 “과격한(radical)””저항”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대신 영화는 티찰라를 통해 ‘새로운’ 블랙 팬서의 모습을 제시한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죄와 실책을 직시한 그는 선조가 남긴 외면의 유산을 거절한 채 전혀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프리카 주변국과 바깥세상이 겪고 있는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안전만을 생각하던 예전과 달리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자신들이 가진 자원과 기술, 지식 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 것이다. 길몽거가 세상을 증오와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그가 온당히 ‘있을 자리’에 오르려 했다면, 티찰라는 자신이 온당히 ‘누려야 할 것’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낮은 자리에서 협력과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유명한 흑인 작가이자 민권운동가였던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책 ‘The Fire Next Time’에 실린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그가 조카에게 쓴 편지 구절을 여러 번 떠올렸다. 조카에게 백인(인종차별을 하는)을 닮으려 하거나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하는 볼드윈은 대신 “그들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You must accept them and accept them with love)”고 말한다. 이들 또한 사실은 차별과 증오라는 덫에 갇힌 사람들임을 상기시키며 “이 무고한 자들에게는 그 외의 희망이 없기 때문(For these innocent people have no other hope)”이라고도 그는 말한다. 억압받는 자가 억압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만큼 ‘과격한(radical)’ ‘저항’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